[Frame의 법칙 2]

너무 감동을 주는 글이라 몇번 본 내용이지만 못 본 분을 위해서 보내 드립니다.

한 친구가 물었다.
자네는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된 다고 생각하나?
글쎄 잘 모르겠 는데.
신부님께 한번 여쭤보는게 어떻겠나?
신부님에게 다가가 물었다.

신부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신부는 정색하면서 대답했다.
기도는 신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절대 그럴 순 없지.
친구로부터 신부님의 답을 들은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건 자네가 질문을 잘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가서 다시 여쭤보겠네.
다른 친구가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님, 담배 피우는 중에는 기도를 하면 안 되나요?
신부는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담배를 피는 중에도 기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
이처럼 동일한 내용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 Frame의 법칙 입니다.

여대생이 밤에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술집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낮에 학교를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원하는 답을 얻으려면 질문을 달리 하십시요.
질문이 달라지면 답이 달라집니다.
나는 과연 어떤 프레임에 매달려 있지는 않은지?
또 다른 각도로 생각해봅니다.

프레임의 법칙이란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틀을 갖고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법칙입니다.
선생님이 매일 지각을 하는 학생에게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 지각을 하는 것을 보고 그 학생이 괘씸해서 회초리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선생님은 차를 타고 학교에 가다가 늘 지각하는 그 학생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한 눈에 봐도 병색이 짙은 아버지가 앉은 휠체어를 밀고, 요양시설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 선생님은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지각은 곧 불성실이라는 생각에 이유도 묻지 않고, 무조건 회초리를 든 자신이 부끄러웠고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라고는 아버지와 단 둘 뿐이라서 아버지를 지켜드려야 하는 입장에 있는 지각한 학생,
게다가 요양시설은 문을 여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학생은 요양원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아버지를 모셔다 드리고,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뛰어서 학교에 왔을 텐데,

그래도 매일 지각을 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 날 역시 지각 한 학생은 선생님 앞으로 와서 말없이 종아리를 걷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회초리를 학생의 손에 쥐여주고 자신의 종아리를 걷었습니다.

그리고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라는 말과 함께 그 학생을 따뜻하게 끌어 안았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울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가 힘들고 외롭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함께 사는 법’을 배울 때 가장 필요한 건 상대방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역지사지입니다.
생대방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고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고 서로가 서로를 포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