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라는 아름다운 책을 쓴 안톤 드 생떽쥐베리 (1900-1944)는 나치 독일에 대항해서 전투기 조종사로 전투에 참가했다.
그는 그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미소(le sourire)라는 단편소설을 썼다.
그 소설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전투 중에 적에게 포로가 되어서 감방에 갇혔다.
간수들의 경멸적인 시선과 거친 태도로 보아 다음 날 처형될 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극도로 신경이 곤두섰으며 고통을 참기 어려웠다.
나는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 한 개피를 발견했다.
손이 떨려서 그것을 겨우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성냥이 없었다.
그들에게 모두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창살 사이로 간수를 바라 보았으나 나에게 곁눈질도 주지 않았다.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 할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나는 그를 불렀다.
그리고는 혹시 불이 있으면 좀 빌려 주십시오하고 말했다.
간수는 나를 쳐다 보고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가까이 다가와 담뱃불을 붙여 주려 하였다.
성냥을 켜는 사이 나와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무심코 그에게 미소를 지워보였다.
내가 미소를 짓는 그 순간 우리 두 사람의 가슴속에 불꽃이 점화된 것이다.
나의 미소가 창살을 넘어가 그의 입술에도 미소를 머금게 했던 것이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준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내 눈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 또한 그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그가 단지 간수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있는 인간임을 깨달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 속에도 그러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에게도 자식이 있소?
그럼요. 있구말구요.
나는 대답하면서 얼른 지갑을 꺼내 나의 가족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사람 역시 자기 아이들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앞으로의 계획과 자식들에 대한 희망 등을 애기했다.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될 것과
내 자식들이 성장 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게 될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그의 눈에도 눈물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아무런 말도 없이 일어나 감옥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나를 밖으로 끌어내었다.
말없이 함께 감옥을 빠져나와 뒷길로 해서 마을 밖에까지
그는 나를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는 한 마디 말도 남기지 않은채 뒤돌아 서서 마을로
급히 가버렸다.
한 번의 미소가 내 목숨을 구해준 것이었다.
웃으며 쳐다 보는 하늘은 언제나 찬란하고 들풀마저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웃음 가득한 얼굴의 사람을 만나면 즐거움이 더해지고
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된다.
살맛을 더해주는 양념이 웃음인가 생각한다.
메마른 삶이라 짜증날 때 마다
한번 크게 웃으며
마음을 다시 다잡아 본다.
<생떽쥐베리의 미소(le sourire)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