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불 맹사성

🐃 고불(古佛) 맹사성의 일화

맹사성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정치인, 유학자이다. 고려국 전의시승, 조선국 좌의정 등을 지냈다.

본관은 신창이다.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동포(東浦)이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맹사성의 할아버지인 맹유가 며느리가 해를 삼키는 태몽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에 들어가 공부하던 자식인 맹희도에게 부친이 위독하다는 급전을 띄워 집으로 불러들인 후 며느리와 동침하게 하여 태어난게 맹사성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최영 장군이 낮잠을 자고 있는데 용 1마리가 집 앞 배나무를 타고 승천하고 있는 꿈을 꾸었다.

놀라 깨어 밖으로 나가 보니 어린 맹사성이 배나무에 올라 배를 따고 있었다고 한다.
최영이 꾸짖는 척 하며 동태를 살피니 보통 아이들처럼 울거나 도망치지 않고 예의를 갖추어 잘못을 고하는 모습에서 범상치 않음을 보고 손녀사위로 삼았다.

이후 최영이 그 집을 맹사성에게 물려주었는데 준 집이 지금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맹씨행단(孟氏杏壇)이다.

조선초 맹사성이 19세에 장원급제하여 파주 군수로 부임,자만심 가득한 청년이었을 때
무명선사의 스님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고을을 잘 다스릴 수 있는지를 물었다.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쁜 일 하지 않고 좋은 일만 하면 됩니다.”

“그건 삼척동자도 압니다”
맹사성은 못마땅하여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했다.

스님은 “어린아이도 다 알지만 실천에 옮김은 팔십 노인도 어려운 일”이지요 라고 말하고 나서
“차나 한잔 들고 가시지요”라며 스님이 차를 따르는데 차가 가득 넘쳐 방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이에 맹사성이 “스님 찻물이 넘쳐 흐릅니다 “라고 말을 하자

“찻잔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어찌 지식이 넘쳐 인격을 망치는 것은 모르십니까”

그 말을 들은 맹사성이 부끄러움에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급히 나오다가 문틀에 머리를 부딪히자 스님이 말씀하였다.

“몸을 낮추면 머리를 부딪칠 일이 없지요”라며 자신의 선지식을 뽐내고 싶은 젊은 혈기에 겸손의 의미를 일깨워 주웠다.

맹사성은 그 일로 깊이 깨닫고 그 후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한 청백리가 되어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정승이 되었다.

겸손이란 남을 대할 때 거만하지 않고 공손한 태도로 제 몸을 낮추는 것이며 남을 높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는 마음이며,
남을 대할 때 거만하지 않고 공손한 태도와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맹사성은 시와 문장에도 뛰어났으며,
음악을 좋아하고 마음이 어질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직 나라에서 주는 녹미(요즘의 월급)만으로 생활을 하는 청백리다 보니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러나 맑고 깨끗한 그의 생활에는 한 점의 티도 없었다.

어느 비오는 날 한 대감이 그의 집을 찾았다가
속으로 놀랐다.
‘세상에! 한 나라의 정승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초라한 집에서 살다니…’

안으로 들어가서 맹정승을 만난 대감은 더욱 놀랐다.
여기 저기서 빗물 새는 소리가 요란하고,
맹정승 부부는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그릇을 갖다 놓기 바빴다.

대감은 그만 눈물이 핑 돌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대감께서 어찌 이처럼 비가 새는 초라한 집에서.…”

” 허허, 그런 말 마오.
이런 집조차 갖지 못한 백성이 얼마나 많은지 아오 ? 그런 사람들 생각을 하면 나라의 벼슬아치로서 매우 부끄럽소.
나야 그에 비하면 호강 아니오 ?”

어느 날 맹사성이 길을 가다 정자에서 잠시 쉬는데, 거기에 어떤 젊은 선비가 먼저 와 있었다.

맹사성의 검소한 옷차림을 보고 정체를 알아채지 못한 젊은이가 그를 놀릴 양으로
“우리 ‘공당놀이’ 한번 해 볼까요?
댁은 말 끝에 ‘~공’이라고 하고,
나는 말 끝에 ‘~당’이라고 하는거요”
한번 해 보시겠소라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맹사성이
“그대는 어딜 가는공?”
“한양에 간당.”
“한양엔 왜 가는공?”
“벼슬자리 구하러 간당.”
“한양에서 벼슬자리 줄 사람은 있는공?”
“없당.”
“그럼 벼슬자린 어떻게 얻으려고 하는공?” “나도 모른당.”
“그럼 내가 벼슬 하나 주면 어떤공?”
(폭소하며) “바라지도 않는당.”

그 후 몇달이 지나 맹사성이 신참 관리들의 하례를 받게 되었는데, 마침 그 자리에 예전에 자신을 놀리던 그 젊은이가 있었다.

이에 장난기가 동해 장난을 걸었다.
“자네, 나를 알아보겠는공?”
“아! 알아보겠심당.”
“그래, 지금 기분이 어떤공?”
“주~죽여주사이당.”

맹사성이 좌의정이 되여 고향인 온양에 볼일이 있어 내려간다는 소식이 파발에 떴다.

그러자 경기도 양성과 진위의 두 현감이 자나가는 길에 그들의 고을을 지나친다는 것을 알고서 맹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마중을 나와 기다렸다.

두 현감은 하인들에게 길을 닦아 청소하게 하고 아무도 다니지 못하게 감시하도록 시켰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두 현감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포졸을 불러 “아직도 소식이 없느냐?”라고 물으니 “아직입니다. 높으신 분의 행차라 그런지 늦어지나 봅니다.” 라는 대답만 들었을 뿐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두 현감은 “알았으니 긴장을 늦추지 말고 잘 지키거라.”라고 단속하였다.

얼마 후 큰길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허름한 옷을 입고 소를 탄 노인이 길에 들어서자 지키고 있던 포졸이
“다른 길로 돌아가시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노인이 “금방 지나갈 것이니 가게 해주시오.” 했다.

포졸들은 노인과 실랑이가 길어지자 화가 나서 노인을 잡아끌고 두 현감에게 데려가 하소연하며 “이 노인이 아무리 돌아가라 화를 내도 꿈쩍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소란한 상황에 두 현감도 궁금했던 터였다. “어떤 사람이길래 맹정승이 오실 길을 지나가려 하느냐?”
다그친 뒤 데려온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니 바로 맹사성 정승이었다.

두 현감은 ‘아이고, 일이 잘못되었구나.
정승 나리에게 큰 실수를 했으니 이를 어쩐담!’ 생각하며 넙죽 엎드렸다.
맹사성이 평소에 소박한 차림새에 하인을 거느리지 않고 혼자 소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 까닭이었다고 한다.

청렴하고 소탈한 위정자의 상징
이 이야기는 높은 지위의 맹사성이 허름한 차림으로 이동을 하는 의외적인 요소에서 비롯된 오해와 진실을 담은 일화이다.

이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관리들의 어리석음과 맹사성의 소탈하게 여유를 즐기는 자유분방함도 대비되어 나타난다.

또한 맹사성을 통해 당시 서민들이 바라던 청렴하고 소탈한 위정자(爲政者)의 면모를 엿보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우리보다 약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돌이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 맹사성의 명언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소.
내 비록 벼슬이 정승이지만
만백성이 내 벗이 아니겠소’